안산 둘레길 산책을 약속한 목요일
숙소를 일찍 떠나 전철역에서 내려
이대 앞문으로 걸었다.
월성당 그린하우스 이화문고 숙녀다방. . .
이제 모두 사라진 길이지만
지나치는 젊은이들 속에
내가 아는 너희 누군가가 꼭 있어 반길 듯
즐거운 회상이었고 아쉬운 착각이었다.
조금 쌀쌀했지만 새파란 하늘에
개나리와 진달래가 방금 나와 수줍은 듯 길가를 장식하고
지나가는 서양 사람 둘에게 사진을 찍어달라 부탁을 하니
내게 묻기를, 어디서 왔냐고 (Where are you from?)
Right here, I grew up right here.
바로 이곳에서 자라난 사람이라 대답했다.
서양 사람 눈에도 내가 토박이가 아닌 것이 좀 서운했다
의식이와 저녁 늦게 와인 한잔하면서
안주로 떡볶기를 주문했는데
옛 이대 앞 떡볶기가 아니었어
너희도 이 실망의 심정을 알 수 있을까?
이대부중 교정에서 봉원동 종점으로 올라가면서
옛 현식이네 기전이네 인덕이네
농구 가르치시던 정미 오빠
금화턴늘 위에 붕 떠버린 명기네 집
군대에서 휴가를 나오니 집이 없어졌다는 이야기
새절 앞에 커다란 돌은 치우지 않았더라
둘레길에서 점잖으신 우리 백 회장과 조금 나중에
몸과 마음이 아직도 빨리 달리는 주 회장과 합쳐
사실 평지에 사는 나를 위해 산보 정도였지만
건강하고 서로 살펴주는 등산 문화도 조금 엿보고
저녁은 목소리가 쩡쩡 울리는 젊은이들의 회식 옆자리에서
아귀찜과 막걸리로
후식은 조용한 아메리카노 커피 한잔
이 모두가 내겐 신기한 고향에 생소한 모습이야.
반세기 흘러간 시간, 머나먼 거리, 무심했던 침묵
이 모두를 마다하고 살아있는 끈질긴 우리의 인연이
우연이 아니었다고
옛 동산을 돌아보며
이곳에서 우리를 키워주신
부모님 선생님의 진실과 믿음과 사랑을
다시 느꼈다.
내 추억의 오솔길을 항상 함께 해 주는
너희 모두에게,
고마워
유진이가
사랑이야 무엇이냐 물으신다면
강산이 다섯번이나 바뀌도록 세월이 흐른 오늘
고향의 땅을 밟는 나의 마음은 반가우면서
좀 두려운 착잡하고 야릇한 기분이지.
서양이나 별 다름없는 롯데 81층 모습에서
이른 아침 인사동 골목길에 서민으로 가득 찬 국밥집,
내게 생소한 이곳이 틀림없이 고향이야
반세기 흩어져 사회생활을 이루고
실제로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다락에 먼지 쌓인 거울을 닦으며
잊힌 옛 사랑스러운 모습을 돌이키게 하는
이화동산의 무 이한 인연,
예기치 못했던 삶의 기쁨이야
지나치는 카톡 몇 마디에
오랜만에 만남에서 오가는 몇 마디에
너의 모습은 무엇인가 더 알고 싶은,
무엇인가 말없이도 마음이 전달될 듯
서로의 삶에 공감이 올 듯한
함께 있는 시간이 너무도 짧게 느껴지는. . .
사랑스러운 가족과 함께 비엔나 여행을 하고
그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사실 전혀 모르는 나와 광재를 위하여,
옛 인연이란 한 이유로
모임을 만들어준 너에게
늦었지만 부족한 고맙다는 인사 올린다
고마워,
사랑하는 존경하는 마음으로
크리스탈 제이드에서 따듯한 너의 손을 잡으면서
고맙다는 말 한마디도 못하고
다시 이즈미에서 기회가 있었는데
너의 미소에 다시 또 정신을 잃었는지. . .
이제 새벽에 잠이 다라 난 시차 속에서
즐거웠던 귀향의 하루하루를 생각한다.
반세기 허구한 날 찾아오는 옛 동창들을
꾸준히 돌봐주는 너에게 새삼스러운 감사말,
어떻게 해야 할까 고심 끝에
오늘은 삼행시를 시도하였다
너의 3자 이름이 쉽지 않아 격식을 조금 휘었음을
양해하기 바란다.
이. . . . . 이루어질 수 없는 그대와의 인연에
혜. . . . . 혜택이 없지는 않습니다. 쓰라린 비~
련. . . . . 련도, 쓰라린 비련도 사랑이니까요
벛꽃이 한창이겠다 여전히 그리운 고향에
고마워
떠나기 바로 전 날 오후 고모님을 다시 찾아뵙고
저녁시간을 명기와 한 잔, 한 병. . .
두 병을 넘으며 조용히 보냈다
반세기를 다르게 살아온 옛 친구와
서로 할 말이 없는 듯 흐르는 침묵 그 순간에
지난 오늘 그리고 내일의 이야기가 밀려나오지
열일곱 청춘에 기꺼이 떠났던 서울
화려한 신작로 뒤에 숨은 내가 모르는 서울도 고향이지만
내가 버렸듯이 나를 버리고 보란 듯이 번화한 서울
강산이 다섯 번이나 바뀌도록 세월이 흐른 오늘
반겨주는 너희가 없을까 한나절 비행기에서 걱정도 한단다
과외 팀 핑계로 따로 모인 이즈미가 아주 좋았어
현종이도 움직일 수 있는 편리한 곳이었고
거동이 불편한 재연이도 나와주고
너는 한 미소로 따듯한 손으로
그 기나긴 세월의 공백을 없애버리는 천사
내게 이런 옛 벗이 있음에 또 감사한단다
네가 할머니라고는 전혀 인식이 안된다만
네가 띄우는 사진 속에 모습이 행복 그 자체야
건강하고, 어머님과 아직도 바쁘신 부군께 안부 전해주기 바란다
고마워,
현실로 돌아가는 비행 한나절
지난 열흘 하루하루를 되돌아보며
문득 귀향이 내게 동화(童話)처럼 여겨졌다.
어리고 미숙했지만
순진한 순수한 이상과
포부로 가득 찾던 이화동산의 나날들이
우리 모두에게 동화와 다름없었지
어린 마음을 함께하고,
그것도 호화스럽게 사랑을 받으며 자라난 우리는
이 동화에 주인공들이었고
너희야 그곳에서 자연히
아마 때로는 힘들게
사회생활에 적응했지만
현실을 타향에서 맞은 내게는
이 고향이
아직 끝나지 않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토끼와 거북이
선녀와 나무꾼
개구리와 공주. . .
너희가 아직도 허물없이 반겨주는
동화책이야
너야 당연히 선녀
고마워
내 동화책에 항상 있어줘서
오늘 뜻밖에 함박눈이 내린다
하얀 눈이 고요히 쌓이는 창밖을 내다보면서
순진하고 순수했던 내 마음 한구석에
먼 어느 날 자리 잡은
너의 모습을 되새긴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
우리가 언제 먼지처럼 사라질지 모르는 오늘
따듯한 손길 정다운 미소 솔직한 너의 마음. . .
옆에서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흡족했지만
조용하고 흐르는 시간을 인식하지 않는 어느 곳에서
너의 반세기의 이야기를 듣고 싶은 간절한 심정이었다.
이런 이야기는 서로 할 말을 못 찾아
침묵이 흐를 때 밀려나오지
이런 기회가 우리에게 있으리라 기대하며
이번 동창 모임에 꼭 오라고 재촉한 너,
정말 고마워
의사소통이 힘든 엔도상
네게 또 우리에게 너무 잘 해주니 축복이고 행복이지
고마운, 사랑하는 마음으로
열일곱 청춘에 기꺼이 떠났던 고향
아랑곳 없이 나를 버리고 번화한 서울
떠나는 아침 시내 벚꽃은 보란 듯이 만발이었다
밀린 일에 한 주가 지나버리고
시차가 왠지 아직도 새벽에 잠이 없구나
떠나기 전날 오후 고모님을 다시 찾아뵈면서
"이제 언제 또 보나’ 하시는 고모님 말씀에 목이 메었었다
우리도 이제 언제 먼지처럼 사라질지 모르는 나이가 되었으니
이번 귀향에 만남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과외 팀 핑계로 순행이도 보고, 재연이도 끌어내고,
힘든 현종이도 함께할 수 있었던 그날
원섭이에 독특한 한 부분을 엿볼 수 있었던 하루
오랜만에 장호선배 11회 이야기도 들어보고
나는 아리따운 여인의 모습 앞에서
정겨운 익숙한 그녀의 목소리에서
아무 무엇도 바랄 것 없었지
마지막 날 저녁은 명기와 한 잔, 한 병. . .
두 병을 넘기며 조용히 보냈다
반세기를 다르게 살아온 옛 친구와
서로 할 말이 없는 듯 흐르는 침묵 그 순간에
지난 오늘 그리고 내일의 이야기가 밀려나오지
난 너희들 덕택에 허물없는 추억이 살아있는
이번 귀향에도 어김없는 행운아
정말 고마워,
사랑하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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