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호야,
어제 서울 방문을 마치고 돌아왔다.
너도 이메일을 받고있으니 알고있었겠지만
40여년만에 귀국한다는 호중이 환영회가 있다는 소식을 명기에게서 듣고 또 경학이의 이메일에서 읽었지.
내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한 두가지 고향에 매듭질 일들이 있어 매해 가야지 가야지 한지가 벌써 7년.
내년이면 어느새 우리가 환갑. . .
청명한 가을 하늘을 쳐다보면서, 단풍으로 붉게 물들은 북한산을 생각하면서,
노란 은행잎 깔린 길목이 눈에 선 하기에
한나절이면 그곳인데. . .
지난주 토요일 저녁 신촌로터리에서 동교동방향으로 '난향'이라는 세련된 음심점을 들어서니
우아한 2 여인이 반겨주는데, 한상원이는 1996년에 보았으니 당장 알아보았고,
그 옆에는 너무나 정겹고 익숙한 얼굴인데. . .
이젠 키도 크고(중고 때 훌쩍 큰모양이야) 세련된 사업인의 모습인,
나와 짝을 수 없이 하면서 고생했던 미숙이를 몰라보았단다.
아미는 남편과 함께 일본에서 들어왔는데, 사춘기를 같이하며 서로 경애하였던 이야기등
내가 항상 부러워했던 준호이상으로(준호와는 유치원시절에 벌써 약혼 사이였다 함) 나를 너무 추켜주어 솔직이 좋았고,
병명도 모르는 힘든 병을 믿음으로 극복한 동숙이와
몇년 전 암 수술을 하였는데 이제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난 영하(박영서)가 반가웠고,
철구도 한국 Heavy Ion Accelerator Project원장으로 바쁜데 시간을 내어주었고,
철구처럼 영순이도 이제 경상도 사투리는 사라졌지만 영순이의 귀여움은 영원한 것, 적어도 내게는.
씩씩하게 살고있는 여걸 김성은.
아마 목사님을 아버지로 둔 친구들의 자라남에서 뭔가 공감되는 모임이었는지도 몰라.
말없이 묵묵한 정천범,
말이 길지 않으나 재치 그 자체 신원섭.
덕수에게 들은 이야기, 그러니까, 어느날 다툼중 그당시 우리가 몹시 겁먹었던 돈수를 울렸었고
그 후 아이들이 덕수를 두려워했다는 이야기를 하니,
돈수는 아무 말 없었는데 원섭이가 느닷없이 자기가 그 사건을 뚜렷히 기억하는데 운 자는 덕수였다나.
나, 이거 또 덕수에게 다시 물어 볼 수도 없고. . .
상원이는 {She is still a striking beauty) 호중이의 쌓이고 쌓인 40년의 그리움을 감싸주는듯한 눈길. . .
마음이 더 아름다운 여인.
태섭이는 마침 나성에서 사업상 귀향, 우리 모임의 소식을 듣고 뒤늦게 찾아왔는데 역시 아직도 "Star" power의 소유자.
영우는 노래방에만 왔는데. . . 노래를 그렇게 잘 해서 거기만 오나?
내게는 1996, 2005, 그리고 올해 2012년, 항상 친구들을 맞아주는 형식이, 혜련이, 경학이,
하나는 열심히 들어도 촛점이 무엇인가 헷갈리게하는 우리에게 있어야만하는 회장님,
그 다음은 너무 똑똑해 머리가 아프다는 소리는 들었으나 여전히 무엇인지 끌리는 아름다운 미소의 여인,
그리고 항상 긍정적이고 바쁜, 비가 쏫아지는 토요일 아침 일찍 나를 보내준 의리의 사나이.
호중이는 너무 너무 기뻤지.
나는 얘 만큼 미국 생활을 했어도 "사랑"이란 단어를 주춤하는 편인데. . . 그날은 그에게 모든 것이 "사랑".
친구들과 화요일 다시 만난는데 난 선약으로 참석할 수 가 없었어.
장현수. . . 영호야, 넌 현수보고싶은 마음도 없냐?
아미 옆에는 남편 그 앞에는 준호가 딱 자리잡고 있기에 어디에 앉아야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명기가 배탈이 나 불참하는 바람에 현수 옆자리가 비워있었어. 난 이렇게 재수가 좋은 사람이지.
현수야 그 때 그대로지. 우아하고, 시원하고, 아름답고.
나중에 남편이 데리러오셔 만나뵈었는데 연애결혼이었으며 행복한 것이 틀림없슴.
3년전인가 이숙례 교장선생님을 6회 동창회가 모실 때 현수나 명기등 여려 친구들의 수고가 많았었어.
그런 모임을 제의하기는 쉬운 일이지만 선생님들을 초대하고, 장소를 마련하고, 동창들에게 연락하는 여러 일등
실행한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지. 선생님 조카, 우리 3년 후배 이상희씨에 의하면
교장선생님의 건강이 여의치 않아 이제 여행을 하시기는 힘드시다 하니 3년전 6회의 모임이 새삼 중요했다 느껴진단다.
현종이도 수요일 일산에 가는 길에 차 한잔 같이했다.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현종이 어머님께 인사도 드리고 싶었는데. .
사실 서울에 볼 일이 있어도 며칠에 끝나는데, 그 먼길 가서 그냥 돌아오기는 너무 아까워.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 소중한 친구들이 이 나이에 이렇게 많아.
모두 함께 만나기도하고 하나 둘 따로 보기도 하고.
서로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 하다보면 의외로 마음이 열리고, 4-50년 공백이 사라지는 순간을 느끼게 된단다.
착각이라고? 그래도 괜찮아, 행복한 착각도 일생에 그렇게 흔한 것이 아니야.
영호야, 연락하고, 다음에 기회가 올 때 들어가자.
유진이가,
이번에 한글이 많이 늘었다고 생각하고 돌아왔는데
내 글에 좀 틀린 점들 이해하고 양해하고 오해없기 바란다.
사진이 너무 크면 다시 보낼께.
지하쳘에서
원섭 돈수 동숙 성은 철구
천범 원섭 성은 돈수 아미 철구 엔도상(아미부군)
위: 상원 경학 아미 아래: 영순 준호 영하
태섭 현수 돈수
위: 현수 아미 혜련 아래: 호중 미숙 형식 동숙
영순 동숙 아미 현수 그리고 나
혜련 상원 동숙 미숙 아미 성은 영순 현수 그리고 나
영우 상원 현수 박찬종(현수부군)
현종이와
혜숙이와 경복궁에서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꿔놓았던 1961년 5월 16일을 생각하면서,
미련은 이 위의 사진들 속에도 쌓여있다만 후회는 없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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