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2005년 12월 31일
이 유진
2012. 9. 2. 07:43
2005년을 보내면서 친구들에게,
2004년은 30여 년 흩어져 삶을 이루어온 옛 친구들을 만나는 기쁨으로 카페에서 살았고
올해는 그들과의 대화 속에서, 또 재회의 환희 속에서 새로운 우정을 쌓을 수 있는 행복한
나날이었다. 한 해를 보내면서 "추파"를 아무리 구상하려 해도 영실이가 안 보여 그런지,
"추파"는 사절한다는 혜숙이 한마디 때문인지 한자도 떨어지지 않는다. 벌써 한 주일
콤에 앉아 고민이지만 이 연말에 내 마음을 놓지 않는 좀 우울한 이야기가 있기에, 이제는
나를 그대로 받아주는 친구들이 있다고 생각하고, 조국을 떠나 성장한 나의 편견에 많은
동의가 있으리라는 착각 없이, 이 글을 올린다.
돌아가신 아버님의 자료를 정리하면서 또 힘든 이민생활 속에서도 조국의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신 이름없는 아버님 동료를 모시면서, 마치 무엇에선가 도피한 듯 미국생활에만
충실했던 나 자신이 왠지 부끄러웠다. 인터넷 한국 신문을 이제 거의 매일 읽으면서, 솔직히
마음이 무거운 편이다. 부시 정책 기사에는 화가 나면서도 황교수 기사를 읽노라면 이들이
조국의 내 세대의 인물들이기 때문인지 너무 슬프다.
황교수, 노이사장, 안교수. . . 이들이 바로 우리 세대에서 고르고 골라 첨단에 오른
elite 들이다. 최고, 최초, 최대라는 단어가 너무나 중요한 사회에, 일등만 하면 모든 일이
용납되기에, 옳고 그른 것도 중요하지만 소용이 없었고, 치열한 입시 경쟁에 살아남은 사람들.
이제 끝까지 살아남기 위하여 이들에게 진실이란 또 하나의 요령일 뿐인듯하다.
사기를 치는 사람이나 사기를 당하는 사람이나, 둘 다, 뿌리칠 수 없는 욕심이 공존하기에
이루어진다는 어느 친구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황교수가 어떤 욕심으로 이런 신기술을 이룩했다
발표했는지는 모르나, 난자를 보급한 병원들이나, 난자를 기증한 사람들이나, 난치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희망에 눈이 멀어 버린 환자와 가족들, 이 신기술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던 정계,
듣기 싫은 보기 싫은 정보는 옆으로 돌려놓고 서로 헐뜯기에 바쁜 언론. . . 우리 모두의 욕심에
이 사기는 가능하였고 이 욕심 때문에 진실은 여전히 교섭 속에 뭍혀있다.
지난 29일 안규리교수의 해명을 읽으면서 황교수의 줄기세포가 부인할 수 없는 조작이었음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는 그 사람의 참담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 생각했는데 오늘 기사에는
이것이 "갈지자 행보"이고 "그동안 줄기세포의 진위 자체를 몰랐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
이라네. 정말 누구도 무엇도 믿지 않는 세상인가? 내 눈에 띈 구절은 "진실도 중요하지만
더 귀중한 것은 생명이라는 사실, 그리고 희망과 사랑이 어우러질 때 진실이 더욱 빛난다는
사실입니다. 저의 진실은 선후배 동료의사들과 함께 정성을 다해 환자를 돌보는 일입니다. . .
기회가 새해에 주어진다면 앞으로는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또다시 눈물을 흘리시지 않게
해드리고 싶습니다."이었다. 아마 "생명"은 1000여 개의 난자 이야기인 것 같은데 나이
50 고해에 아직도 "진실"을 좁은 시선에 두고 있다 생각했다.
한 연구팀의 허위, 조작은 동서양에 새로운 것도 아니고 놀랄 일도 아니다. 내가 제일 가슴 아프게
느끼는 것은 많은 국민의 반응이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차원에 있다는 점이다. 얼마나 세상을 믿지
못하면 조사 위원회 발표도 못 믿고, 관련된 교수, 연구원의 증언도 못 믿고, 외부 염색체 검사결과도
못 믿고, 이것을 보도하는 언론도 못 믿고. . . 그러나 황교수는 믿는다는 황당한 이야기. 황교수의
조작을 증언한 사람들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배반자로만 보이고 부정한 상사에게도 충성은 무조건의
충성이어야 한다는 이야기. 그까짓 논문에 오류가 있지만, 조작이 좀 심했다고는 하지만, 국익을
위해서는 그냥 넘어가야 하고 다시 이 세계가 낳은 과학자에게 재연 투자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 . .
여기저기 우리가 반성해야 하고 배운 것이 많다는 사설을 읽으면서 동의하지만 믿음과 진실이
이렇게 힘들어하는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반성으로 다짐하여 해결될 일이 아니라 생각한다.
이곳 미 의학계의 윤리성 문제를 향상하기 위하여 의대에서 윤리학 과목을 추가한다는 기사를
한때 읽으면서, 난 옳고 그른 것을 20대 초반에, 치열한 입시경쟁으로 뽑은 성인에게 교과서로
가르치기는 너무 늦은 일이라 생각했다. 의사들의 윤리성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의대가 입학생을
뽑는 과정에서, 치열한 수능 경쟁으로 미래의 부유를 미끼로 학생들을 골랐을 때, 윤리성이
부족한 학생들을 선택하였다는 결론이다.
경제적으로 힘들고 미숙한 교육체제에서 과정에 신경을 쓸 겨를없이 결과를 중요시 하였던,
믿음과, 사랑과, 진실이 사치스러웠던 우리 세대의 열매가 이번 황교수 사건에서 몸 서리치게
느껴진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세련된 오늘의 우리 사회에서 일반 교육의 목표와 방법을 용감하게
다양화하고 극소수인 우리들에게 베풀어졌던 교육 사상이 다시 실천될 수 있는 여건이 이루어지기
바랄 뿐이다.
.
.
.
한 해 마무리 짓는 오늘, 난 다시 그곳을 떠올린다. 나의 소중한 친구들과 인연이 이루어진,
아카시아 향기에 가득찬 그곳을. 그곳이 내게 주는 따듯한 위안과 꺼질 수 없는 희망에 감사한다.
돌아갈 수 없었지만 떠나가지 않은 머나먼 옛날의 그곳이 내 마음에 살아있는 것은 수능시험 점수가
높아서가 아니고, 정계에 산업에 출세한 동문들이 많아서가 아니고, 그저 단순한 사랑과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사랑과 믿음속에 진실은 그렇게 복잡하고 애매한 것이 아니다.
새해에 모두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이 계속하리라 기원하며, 나는 "추파" 를 되 살릴 것을 약속한다
2005,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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