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2009년 동창회를 앞두고

이 유진 2009. 11. 6. 10:43




형식아, 그리고 옛 동무들에게, 명절이면 휴일이지만 가족들 모임에 무척 바쁘리라 생각된다. 모두들 건강하고 잘 지내고 있으리라 믿으면서 오는 동창회를 앞두고 우리가 이미 알고있는 이야기지만  이숙례 교장선생님에 대하여 옛이야기를 하고픈 마음에 펜을 들었다.    지난 30년 시카고를 지나시는 교장선생님을 3번 모시면서  늦기전에 오직 선생님을 위한 동창회를 해야한다고 다짐했다만  어느새 그 세월이 지나고 벌써 연세가 85.   이번 가을 모교 전 동창회에 마침내 돌아오시는 선생님을  먼 이곳에서 보내는 내 마음이 착잡하고 부끄럽다. 이번 동창회에 보여주고 싶은 옛 활동사진과 친구들이 보내준 사진을 편집하면서 우리 모두가 얼마나 사랑을 받고 컷는지 절실히 느꼈고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와 경제 안정이 우리 부모님 세대의 희생과 노력의 결실이라 감사히 생각하고 감탄할 뿐이다. 이제 환갑을 바라보면서 성장과정에 그리고 사회생활에 부모님과 가족이외에 가장 중요했던 사람이 내겐 이숙례 교장선생님이었다 생각한다. 국민학교 시절에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시며 그저 무서운 교장선생님이셨지만 철이 들면서 또 부유한 미국에서 내 아이들의 교육과정을 보면서 3-40년전 내가 받은 교육정도도 찾을 수 없는 실정에 한탄했었다. 우리의 이대부국은. . . 회초리 없이 우리 모두를 하나의 어린 사회인으로 존중하며 키운 곳. 각 반 50여명의 학생 학습활동을 학기마다 조목조목 지적하며 자상히 손으로 쓰여진 생활보고서. 학부형의 요구로 "가나다라마" 성적을 주셨지만 등수와 우수학생 명칭을 질색하셨고,  졸업생 모두가 그 아이 나름대로 우등생이라 말씀하셨던 선생님. 등사판을 돌리던 그 시절에 출판된 우리의 모습이 담긴 무려 12권의 파랑새. 제의 토론 동의 표결. . . 회의의 질서와 의견의 존중을, 민주사회인의 근본을 교과서에서가 아니고 매주 어린이 회의에서 실천하며 배웠던 곳. 대통령의 사진을 교실마다 달으라는 군사정권의 지시를  하루 아침에 죄인으로 변신하는 국가원수의 사진이 교육에 아무런 가치가 없다하시고 거부하신 선생님.  아침 2-3시간 분단학습으로 주어진 과제를 의논 협조하며 완성하는 과정은 사회생활에 기초. 월요일 첫 학습시간을 예배로 시작한 우리에게 사랑과 믿음이 아무 강요 없이 스며들었다 생각한다. 야구공으로 깨진 미술실 유리창과 호랑이 선생님,  요정에 홀린듯이, 숨소리조차 낮추며 조용히 들었던 최신용 자료실 선생님의 '미녀와 야수' 이야기, 과학, 보건, 음악. . . 우리에겐 특별활동실과 선생님들이 따로 있었어. 특수한 교사 한분 한분을 사범대학에서 키우시고 채용하시면서, 이것은 좀 너무하셨다 난 아직도 생각한다만, 주어진 2학기 동안에 결혼을 못한다는 조건으로 계약서를 받으신 선생님. 그 이유를 여쭤보았던이, 학기 중간에 결혼을 하게되면 신혼살림과 시집살림에 어떻게 학생들에게 충실할 수 있었겠냐고 말씀하셨어.   이 모든 것이 그 당시 나이 40 젊은 여인의 이념과 헌신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믿기 어려운 사실이다. 한 10년 전인가 은영이가 시카고에 들렸을 때 상구, 혜정이, 나 , 넷이서 얘쟤하며 저녁식사중  혜정이가 다니는 교회  장로쯤 되 보이는 사람이 혜정이에게 인사하면서 우리 3 남자를 

훌터보는듯 하여 우리가 국민학교 동창이라고 소개를하니 장난하느냐는듯 쳐다보았어.

세계 방방곡곡에 흩어져 제 나름대로의 삶을 이끌어온 우리 모두에게 아직도 살아있는 끈질긴 

인연이 우연이 아니고, 착각일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서로 설명을 할 필요가 없는 

가치관과 사랑과 그리움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이대부국은 그리고 우리는 선생님이 뿌리신 씨앗 대단한 인물이 아니되었어도 나름대로의 소중한 삶을 이끌어온  다시 그 씨앗을 뿌릴 수 있는 극소수의 행운아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전 동창회가 19회의 개최라 알고있다만 1972년 12회를 마지막으로 모교를 떠나신 선생님에게  또 그후 이대부국 교육방침을 못 마땅하게 여기시고 모교를 멀리하셨던 선생님에게  찬란한 반세기의 이대부초 졸업생들의 인사 보다  이대부국의 첫 여섯 학년을 채운 초기 동문들의 참석이 더 의미가 있지않나 생각된다. 전 동창회야 빠진다 하여도 선생님을 우리 6회가 모시게된 저녁모임은 행운의 특권이라 생각한다.   사회생활 하루하루가 바쁜 우리들이 40여년이 흐른 오늘, 선생님이 누가 누군지 알아보실 리도 없고 어렷을 때 그저 무섭고 어려웠던 교장선생님을 뵈러가는 그 모임을  설마 가볍게 생각하리랴만. . . 아마 다시 없을 이 모임을 주선하고 매사에 신경을 쓰고있는 친구들에게 감사할 뿐이다. 먼곳에서 아무 도움이 안되는 주제에 염치없이 두서없이 늘어놓은 것을 용서하기 바란다. 추석 즐겁게 지내고 10월 10일 짧은 시간이지만 아름다운 옛 어느날로 돌아가기 바란다. 10월 1일, 시카고에서 유진이가